젊음을 빼고 모든것을 가진 노인과 젊음만 있고 아무것도 없었던 제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시기하는 이야기. 그리고 두사람 사이에서 은교는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채 누군가의 관심에 목마른 너무도 어렸던 소녀. 결국 세사람중 어느 누구도 진실된 사랑을 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적요는 작품이 교과서에 실릴만큼 문단에서 권위있는 시인이다. 재능도 출중하고 사회생활이라 칭하는 마음없는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본인은 자신의 늙음에 한탄하지만 늙음이 딱히 삶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고된 살림살이는 부려먹기좋은 제자에게 일임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알바를 쓴다. 영화에서도 은교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유일한 제약은 연애가 자유롭지 못하다는것 뿐이다.

지우는 신인작가이자 적요의 제자다. 그의 시에 반해 문인이 되었지만 재능이 없어 발전이 더디다. 보다못한 스승이 재능기부 수준으로 재미삼아 쓴 장르소설을 제자의 이름으로 발표했는데 그것이 매우 잘팔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스승의 재능이 탐나 스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는데,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서 부자관계와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칭할만큼 그의 스승에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며 그의 모든것을 손에 넣고 싶어한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어느날 은교가 나타난다. 젊음의 생기가 가득한, 젊고 어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조금은 어리숙한 소녀에게 노인은 마음을 빼앗긴다.

적요는 자신의 늙음이 한탄스럽다. 젊음만 있다면 은교와 마음껏 연애할 수 있을 터였다.
지우는 적요의 마음을 앗아간 은교가 밉다. 자신의 모든 노력과 허드렛일과 굴욕을 바쳐서 간신히 얻어낸 그의 신뢰를 젊은 여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얻어낸 은교가 밉다.

은교는 적요의 연애상대가 되진 못했지만 문학적인 뮤즈가 되었다. 은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소재로 적요는 아무에게도 발표할 수 없는 글을 남긴다.

지우는 적요의 은밀한 글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의 재능이 탐이 났던 그는 적요의 글을 도둑질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상까지 받는다.

소설 '은교'는 적요의 유일한 보물이었다. 절대 가질수 없고 품을수 없는 유일한 것을 제자는 도둑질했고 그로인해 지우는 적요로부터 모든 신뢰를 잃어버렸다.

지우는 탐욕적이다. 재능도 뭣도 없던 그는 여지껏 굴욕을 팔아 생존해 왔다. 그래서 좋아하는 스승의 글을 빼앗고 스승의 명성 카피했으며 급기야 스승의 보물이던 여자까지 빼앗았다. 적어도 그렇게 해서 그는 선생이 가진 모든것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었다.

은교와 지우의 정사를 보게 된 적요는 분노한다. 늙었다는 이유 하나로 재능도 뭣도 없는 버러지같은 자신의 제자에게 가장 소중한 은교를 빼앗겼다. 자신에겐 이미 없어져 버린 젊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제자가 부러워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적요는 지우를 죽여버리고 은교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 어떤 발악을 해도 지우를 죽여버려도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젊음에 좌절하며 결국 은교에게 혼자만의 이별을 고한다.

은교는 자신의 탐욕으로 죽음의 철퇴를 맞은 지우와 젊음에 목멘 나머지 마음이 폐허가 되어버린 적요에게 안개꽃을 주고 떠난다.

늙음이란 참으로 서럽고 비참하다. 스스로 쌓아올린 것들에게서 눈을 멀게 한다. 은교를 사랑하던 순수했던 마음은 그 마음이 깊어지면 질수록 자신의 것을 호시탐탐 노리는 제자가 눈에 밟힐수록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에만 얽매이게 된다. 젊음에만 얽매여 은교를 사랑하는 마음도 멀리한 채 복수에 치달았던 적요. 몸이 늙는 것처럼 마음도 함께 늙으면 좋으련만 문학적 감수성이 빛나는 대문호 적요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마음이 너무 파릇파릇 했었나보다. 그래서 그의 말이 너무나 사무친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으로 인한 보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죄의 댓가가 아니다.'

ps. 자신이 이리도 아름다웠는지 몰랐다던 은교가 그 글의 주인이 적요임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은교와 적요는 진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세속적인 성공만을 말하는 지우와의 관계가 진짜 사랑이 아님을 은교는 스스로 알고 있었고, 담장에 사다리가 놓여 있다는 이유로 남의집 앞마당에 침입해 꿀잠을 즐기던 은교의 성격으로 보아 몇십년이나 되는 나이차나 세상의 시선따위 콧방귀도 안뀔것 같기 때문이다.

ps2. 가끔 엄마와 대화를 할 때, 요즘 젊은 애들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엄마의 반응은 '요새 안태어난게 다행이다' 와 '그래도 고생할 수 있는 젊음이 부럽다'는 두가지 반응이 나오는데, 후자쪽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리뷰는 예전의 제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티스토리로 옮겨온 것입니다. 3,4년 전에 썼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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