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명작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가 원작이다. 감독은 <음식남녀>, <와호장룡>, <색, 계>, <브로크백 마운틴>등 유명한 영화를 여럿 연출한 대만의 이안 감독. 수상 이력도 화려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두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예전에 <헐크>도 만든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재밌게 봤지만 그래픽이 후지다며 마블 팬들에겐 많은 욕을 먹었었던... 사람들이 헐크에게 원했던 것은 화끈한 액션씬이었을텐데 이안 감독의 성향대로 너무 철학적이고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으로 끌고가긴 했다. 나는 그런 느낌이 매우 좋았지만. ㅎㅎ 어쨌든 <라이프 오브 파이>, 난 처음에는 그의 작품인 줄 모르고 봤다가 크레딧에 나오는 이름을 보고 아! 했는데 그가 참 좋아할 만한 주제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선박 난파사고의 생존자 파이와 재밌는 글감을 찾는 작가의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있다. 파이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유래. 3.14로 시작되는 끝없이 이어지는 바로 그 파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원을 설명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물론 진짜로 수학 기호 파이가 이름인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세련된 수영장 상호에서 따온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으로 놀림을 받자 (pi=pee=오줌싸개) 주인공은 더이상 놀림을 받지 않기위해 자신의 이름은 수학기호 파이에서 따왔다고 설명하며 왕따에서 벗어난다. 파이가 이름으로 놀림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파이의 숫자를 달달 외웠던 노력은 매우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초반부에 적지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 일화는 마치 주인공이 인터뷰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자신의 개인적인 무용담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역경에 빠진 주인공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대한 힌트가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은 같은 이야기를 두가지 방식으로 하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 바다 위에서 조난당하며 살아남는 환상적이고 기적적이며 동화 같은 이야기. 또 하나는 왠지 진짜 현실이었을 듯한 조그마한 배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 호랑이는 파이 자신을 의미하며 바다 한가운데에 남겨져 내면의 야성(호랑이)과 인간으로서의 이성(파이)이 치열하게 공존하며 살아 남은 이야기다.

그리고 두가지 버전을 모두 작가에게 들려주고는 '증명할 수 없는 두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이 영화 전체의 주제와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게 되고 신에게, 신앙에 의지하게 되는가를 잘 설명해주는 질문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종교적인 장치가 매우 많다. 주인공은 무려 3개의 종교를 가지고 있고 3천개의 힌두신을 믿으면서도 유일신을 믿는 크리스찬이기도 하다. 조난당해 바다에 홀로 떠있을 때는 신에게 끝없이 자신이 당한 고통의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한다.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식인 섬에서는 섬 자체를 숭상하고 있는 듯한 엄청난 무리의 미어캣을 보며 마치 맹목적인 신앙을 보여주는 대규모 신도들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도 있다.(진짜 현실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썩어가는 시체안에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음.ㅠㅠ 그건 아니라고 말해줘..근데 식인섬을 환상의 섬인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가 죽은 후 한동안 버리지 못하고 구더기가 우글댈 때 까지 버티고 있다가 이러다가 같이 썩어들어 갈 것 같아서 시체를 치운 건가...다른 사람들 해석 보면 자꾸 더 끔찍한 상상만 하게 된다.ㅠㅠ) 이런 식인섬의 설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으며 그저 아름답게만 밑도 끝도 없는 천국에 대한 환상만을 심어주는  신앙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파이는 그런 끔찍한 경험을 종교적 경험으로 치환하며 생환했다. 그에게 망망대해에서 절망하지 않게 해주었던 것은 종교적인 힘이었다.

 

특히 호랑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이성과 대비되는 짐승과도 같은 야성이었을까. 생존을 위해 타인을 해치며 잡아먹는 생존욕구였을까. 특히 식인에 대한 암시는 그의 어머니가 베지터리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서도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는 모든 동물에겐 인간처럼 영혼이 있다 여겨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냈는데 바다에 고립된 배 안에서도 지키고 싶어하는 신념이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파이는 커다란 물고기를 먹기위해 때려죽이는 것만으로도 매우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고기를 잘 먹던 그가 생선을 죽였다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모든 인간들을 동물로 치환한 것으로 보면 결국 그 생선도 한명의 사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파이는 그 호랑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라 말한다. 잡아먹히지 않기위해 늘 깨어있어야하고 늘 현명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함부로 죽이지 않기위해 방법을 생각해야 했던. 자신 안에 있던 위험한 야성-즉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야성이지만 그러기에 늘 경계하며 조심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넘어갈 수 있는 지혜를 주는 힘이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망망대해를 혼자가 아니게 느껴지게하는 존재로서, 함께 고난을 격는 동료의 존재라는 의미였다면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내면에 늘 함께하고 있는 신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호랑이는 육식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인데 아마도 자연의 섭리. 즉 신의 섭리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파이와 호랑이의 관계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내면에 존재하는 신앙에 대한 이해(신의 존재-즉 우주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방식)로 생각할 수도 있을것 같다. 육식이라는 끔찍한 살해 행위를 자연의 섭리로서, 신의 섭리로서 애써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 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파이가 말한 일련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마주치게 된 끔찍함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승리의 산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두번째 이야기 덕에 솔직히 나는 '아 뭐야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냥 주인공 상상이었어?' 하는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그만큼 첫번째 이야기는 굉장히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호랑이가 너무 좋아졌던 기적적인 이야기였다. 정말 마지막까지 호랑이가 죽지 않길 바랬으며 '아! 이건 진짜 대박 동물영화다!' 라며 감탄했는데. 아... 이것은 동물영화가 아니었다...

 

 무엇이 마음에 드는가로만 따진다면 둘 중 첫번째 이야기만을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담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가를 본다면 두번째 이야기또한 잊지 말아야할 이야기 같기도 하다. 파이는 두가지 이야기를 모두 말했다. 절대 첫번째 이야기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것을 애써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첫번째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작가가 첫번째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을때 그는 인사처럼 고맙다고 말했다. 나에겐 마치 파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정신승리의 산물이 꼭 필요했던 일이라는 것을 증명받았기에 느껴진 고마움처럼 느껴졌다. 호랑이와 파이 둘이서 공존할 때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동화같은 이야기와 끔찍한 현실 두가지를 모두 기억하며 그는 가장 현명하게 현실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해석을 하게되는. 끝까지 호랑이와 식인섬과 수많은 동물들이 누구였을까 상상하게 되는. 감독의 전작 <와호장룡>을 보면서 나는 이 감독이 '호접몽'같은 세계관을 참 좋아하는 구나라고 느꼈는데 이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야말로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것인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것인가를 헤아리는 우주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사색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을 망망대해에 떠 있는것 같은 나의 삶에도 울림이 깊었던 영화였다. 나는 나의 현실을 얼마나 바로보고있으며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미래를 향한 노력을 놓지 않아야 할까. 이 영화는 종교를 때려치라거나 혹은 신앙을 권유하는 영화가 아니다. 삶에서 믿음이 필요하다면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종교를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하는 영화였던것 같다. 자신에게만 일어난 끔찍한 일이 있다면, 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자신이 있다면 어떻게 스스로의 폭력적인 내면과 싸워가며 위태로운 현실을 현명하게 헤쳐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종교서적에서 그려지는 허무맹랑한 기적같은 이야기에 왜 그 많은 인류가 믿고 의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모든 사람은 그런 기적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가 물처럼 소금처럼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파이는 호랑이가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조차도 하지않고 떠나갔다며 결국은 자신과 호랑이는 영혼을 나눌 수 없었다고 섭섭해했다. 이성과 야성, 혹은 현실과 신앙은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러한 존재는 오직 극한의 어려운 상황일때만 필요하고 어려움이 지나간 후 행복한 상황이 오면 호랑이가 (기적을 말하는 신앙이나 내면의 폭력성이) 나타날 리 없다는 뜻일까. 워낙 철학적인 이야기다보니 별 의미없는 지나가는 말에도 온갖 추측과 상상과 숨겨진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영화 한편을 보고 난 후 많은 얘깃거리와 의미를 상상하며 마치 고민하는 고상한 철학자가 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매우 강추하는 영화다. 그러나 쓸데없는 여운같은것 싫고 찝찝하게 남는 거 싫다면 괜히 봤다 할 수도 있다. 그저 아름답기만한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꼭 보라고 하고싶다. 친구나 여럿이 함께 본다면 같이 할 얘깃거리도 많을 것 같다.

 

cg는 크게 거슬리는 것 없이 자연스러웠다. 특히 식인섬이라던가 망망대해 속에서 혼자 미쳐가며 바닷속의 환영을 볼때는 극장에서 보면 훨씬 좋았겠다 싶었다. 되도록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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